더는 이런 마을 싫어요!
이런 인생도 싫다고요!
다음 생에는 도쿄의 꽃미남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미츠하가 풍양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리친 말이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마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씹은 쌀을 뱉어 구치카미자케를 만드는 게 부끄럽게 느껴진 것이다.
가장 친한 텟시와 사야한테도 오지 말라고 할 정도다.
왜 도쿄일까
이제는 모두가 시골보다는 도시에 살고 싶어한다.
시골에서는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토모리 마을은 시골 중에서도 작은 시골이라, 서로 다 아는 사이다.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이런 동네. 서점이 있나. 치과가 있나.
전차는 두 시간에 한 번. 버스는 하루에 두 번 있고.
일기예보는 대상 지역 외고, 구글 지도 위성사진에는 아직도 모자이크로 표시되고.
편의점은 저녁 9시면 문을 닫으면서, 채소 씨나 고급 농기구 따위만 팔고 있다.
맥도날드도, 모스버거도 없으면서 술집은 두 개나 있고.
일자리도 없고, 시집오는 사람도 없고, 일조 시간은 짧고.
미츠하와 사야는 이런 마을이 싫다.
그래도 평소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 동네가 오히려 시원하고 어딘지 모르게 자랑스럽게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답답한 면이 보이기 마련이다.
미츠하는 아버지는 이장이고, 할머니는 신사의 신관이라 마을 사람 모두가 안다.
그렇기에 평소에 머리도 항상 엄마가 알려준 방식대로 묶고 다닌다.
세 갈래로 머리를 나눠 땋고, 그걸 말아 올려서 묶는 많이 귀찮은 방식이다.
미츠하는 이걸 매일 한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묶지 않는다면, 똑바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잔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요츠하의 생각을 빌리자면, 정말 존재감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숙제는 무조건 다 해가고, 성적도 좋은데 세상의 흐름에서 한 발짝 벗어난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듣기 좋게 표현하면 차분하다고 할 수 있다.
딱 정해진 틀 안에서 행동하면서 지낸다고 볼 수 있다.
사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3대째 주민 센터 방송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할머니가 사야를 보면, “방송 아가”라고 부른다.
고등학생인데 벌써 미래가 정해진 듯 생활하는 이 동네가 싫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마을에서 벗어나, 다양한 아르바이트라도 존재하는 도쿄가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왜 남자가 되고 싶었을까
미야미즈 신사 특성상, 풍양제를 진행할 때 모든 건 여자가 한다.
신악무를 추지 않아도 되고, 머리를 묶지 않아도 되고, 구치카미자케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마을 사람들의 구경 거리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아버지처럼 신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떤 상태인가
미츠하는 마주칠 때마다 엄격하게 구는 아버지가 너무 싫었을 거다.
그럼에도 화해하고 싶어한다는 게 소설에는 나온다.
타키는 부모님과 싸웠을 때 어떻게 해?
라면서 화해할 방법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면 마음이 들면서도 마주치기만 하면 엄격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 화해할 마음이 사그라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아버지랑 같이 좋은 관계로 남고 싶다는 마음만은 항상 간직하고 있다.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그래서 타키의 몸일 때에 그 소망을 실천했다.
타키 아버지의 직장도 따라가기도 하고, 오늘만이라면서 타키는 만들지 못하는 감자 조림도 같이 해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괴리감을 느끼는지, 낯설어 보일 만큼 심각한 표정을 짓고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느낌을 내뿜는다.
아버지인 토시키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연이 있다.
당연히 딸과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존재한다.
하지만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하지 못했고, 서로의 마음이 맞지 않아 대치 상황이 길어졌다.
그래서 진짜로 싫어하는가
모든 걸 버리고 떠나고 싶다기 보다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단지 주변 환경에 의해 나쁜 경험이 좋은 경험보다 더 많이 쌓이게 되어 떠나고 싶다는 표현이 됐다고 본다.
자기를 묶는 행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미츠하 나름의 몸부림인 셈이다.
나가 아닌 남들이 원하는 나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려주고 있는 것만 같다.
오늘의 깨달음 : 나다움을 잃지 말자
사람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렇기에 주변 환경만큼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주변 환경이 어떤가에 따라 나의 행동과 성격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건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나와 어울리는 주변 환경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걸 찾기 위해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