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른이다.

아스나와 신, 슌은 아직 어린 아이다.
하지만 선생님으로 나오는 모리사키 또한 어린 아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별을 쫒자 “별을 쫓는 아이” 영화 일부분

나만의 별을 쫓는 사람들

인간은 각자 자신만의 별을 쫓으며 살아간다.
누군가를 돈을 위해, 누군가는 영생을 위해, 누군가는 지식을 얻기 위해 살아간다.

아스나와, 신은 죽은 슌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모리사키는 죽은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모리사키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는 죽은 자들의 도시를 찾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는다.
그리고 자신의 별을 위해선 남의 목숨조차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원하는 걸 어떻게서든 얻어야 하는 게 정말 어린 아이답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모리사키라는 생각이 든다.
아스나와 신, 슌은 그저 모리사키에게 길을 알려주는 아이들이다.

나만의 별을 쫒자 “별을 쫓는 아이” 영화 일부분

죽은 이를 애도하는 방법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이 죽으면 올바르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애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 모습을 아스나와 슌이 신을 애도하는 것으로도 보여준다.
이 세상에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 신을 위해 실컷 우는 것이다.
이는 이들이 슌을 애도하는 방법이었다.

또다른 어른인, 아스나의 엄마도 이런 방식으로 애도했다.
아스나의 아빠가 죽었을 때,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집에 가는 길에 울어버렸다.

하지만 모리사키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항상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아내였고,
혼자서 아픔을 모두 끌어안고, 결국 혼자 죽은 아내가 불쌍하다고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마음 때문에 아내를 되살리려고 하는 거다.

나만의 별을 쫒자 “별을 쫓는 아이” 영화 일부분

상실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것 또한 삶의 일부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어른이 되지 않은 거다.
아내가 없는 세상은 대비하지도 않을 거고,
그런 세상은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어린 아이나 할 법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게 보면, 순애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저 철이 들지 않은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모리사키를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황천의 도시, 아가르타에서 돌아온 아스나는 이후에 정말 밝게 살아간다.
더이상 아가르타의 노래를 들으려고 혼자 외로이 지내지 않는 모습을 영화 막바지에 보여준다.
어리지만, 성장했다는 걸 잘 보여준다.


오늘의 깨달음 : 상실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

이전 초속5센티미터 글에도 썼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한다.
이미 우리는 많은 헤어짐을 통해 상실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올바른 극복하는 저마다의 방식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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