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츠하의 엄마, 후타바와 토시키의 만남은 미야미즈 신사 때문에 시작됐다.
토시키는 일본 전통 문화 연구를 위해 이토모리 마을로 온 것이었다.
후타바는 오래 전 헤어졌던 친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토시키를 반겼다.
왜인지 잘은 모르지만, 처음 만났을 때 제가 당신과 결혼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일까요. 이상하지요.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이렇게 둘은 연구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많이 만났다.
결국 기존 약혼을 파혼하고, 미야미즈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와 후타바와 결혼했다.
이후에는 알다시피, 미츠하와 요츠하를 낳았다.
하지만 요츠하가 태어나고 2년 후에 후타바는 이 세상에서 떠났다.
미야미즈에서 쫓겨난 토시키
토시키는 후타바를 잃고 난 후에 며칠 동안 계속 방에서 울기만 했다.
이 모습을 보고, 미츠하와 요츠하는 무서워했다.
그렇게 신사 장례식에도 나서지 않았다.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방에서 나왔다.
이날 이후에는 마을 사람들과 미츠하의 할머니인 히토하는 그다지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후타바가 이게 운명이라고 했다면 그런 것이겠지.
후타바 씨는 좋은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이니, 신이 빨리 불러들인 거야
이 모습에 토시키는 충격을 받아서, 결국 싸우게 됐다.
이 날 이후로, 토시키는 히토하에 의해 미야미즈에서 쫓겨난다.
쫓겨난 상태에서도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는 서서히 솟아났다.
후타바가 죽은 것에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에게 배신당해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식 저변에 깔려있는 미야미즈 신사를 중심으로 하는 통합력이었다.
즉, 신에 대한 신앙을 중심으로 삼는 공동체를 신뢰하지 않게 됐다.
그렇게 이 구조를 부수기 위해 이장이 되기로 한 것이다.
후타바가 제대로 애도받게 하기 위해서…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죽은 뒤에서라도 후타바를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려주기 위해서…
딸들을 사랑하기에 할 수 있던 일
이토모리 마을에 남아 이장을 하게 된 이유 중에는 미츠하와 요츠하도 포함한다.
후타바와는 다른 길을 걷게 하기 위함이다.
이 어두운 신사에서 해방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어했지만, 거절당했다.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가끔씩 딸들을 보러 집에 찾아오기도 했다.
요츠하는 그래도 다가가긴 한다.
근데 미츠하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마음이 깊게 박혀있어서 다가가진 않는다.
점점 후타바와 닮아가는 미츠하가 무서웠다.
보기만 해도…
얼려버린 무엇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요츠하도 언젠가는 그렇게 변할까.
이런 마음이 계속 갖고 있는 토시키였다.
그래서 미츠하의 몸으로 타키가 토시키를 찾아갔을 때, 미츠하가 아닌 걸 알아볼 수 있던 것이다.
혜성이 떨어지는 날, 대피를 시킨 이유
미츠하가 본인의 몸을 되찾고, 다시 이장실로 돌아오기 전이었다.
요츠하와 히토하가 먼저 와서 얘기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미츠하의 이상한 행동과 혜성이 이곳에 떨어진다는 말을 토시키에게 전해줬다.
이미 혜성은 갈라졌고, 그 장면을 보고 있던 토시키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두 갈래로 갈라진 혜썽의 꼬리를 본 순간 토시키는 떠올렸다.
이 곳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무의식적으로 깨달았다.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하늘에서 별이 떨어져서.
꼬리를 끌고 떨어진 별이 용으로 인식되고.
그 용은 직물로 물리칠 수 있었다.
직물, 혹은 실매듭은 사람과 사람이 이어짐을 의미하는 표현.
이 설화와 관련된 글은 추후에 작성될 것이다
후타바와 처음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런 모든 이미지는 처음부터 토시키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이런 이미지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열쇠가 나타나기만 하면 됐었다.
그 열쇠만 나타나기만 하면 모든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토시키는 혜성이 이 마을에 떨어지리라고 무의식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성적으로는 이 사실을 부정하는 상태였다.
토시키는 그 열쇠가 나타나면 버럭 분노할 준비까지 됐었다.
하지만, 그 열쇠가 등장하자, 준비되어 있던 답이 찾아왔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법이다
후타바가 병에 걸려, 병원에서 투병하고 있을 때 했던 말이다.
이 말 또한, 토시키는 기억하고 있었다.
토시키 본인이 이 위치에,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정해진 하나의 운명이었다.
지금의 토시키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간섭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다.
사람들을 피난시켜달라는 미츠하의 부탁을 듣고, 피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입장이다.
그런 강한 권력을 가진 존재가 되고 싶다고,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의지로 강하게 바랐다.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결국 후타바의 얼굴을 가진 미츠하가 토시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였던 것이다.
후타바가 토시키에게 마지막으로 건넸던 말이 맞았다.
이건 이별이 아니야
오늘의 깨달음 : 슬픔은 직접 맞이해야 한다
아무리 슬퍼도 슬픔의 원인이 되는 것에 직접 마주쳐야 한다.
토시키도 결국 그토록 부정하고 있던 후타바와의 이별을 드디어 마주했다.
그것도 후타바를 무척이나 닮은 미츠하를 통해서 말이다.
슬픔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다면,
왜 슬픈지,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다음에 찾아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없을 거다.
여러분의 깊은 마음 속 감옥엔 뭐가 갇혀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