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는 왜 이토모리 마을을 구했을까

미츠하의 벨소리다.
그렇다는 건, 오늘도 시골에서 지내야 한다는 소리다.
잠에서 덜 깬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좋아, 방과 후에 텟시와 추진 중인 카페 만들기를 계속할 수 있겠다.

아침에 일어나, 몸이 바뀐 걸 깨달은 타키가 한 생각이다.
아무것도 없는 이토모리에 적응을 완료하고, 친구와의 계획도 갖고 있다.
반대로 미츠하도 오쿠데라 선배와의 데이트를 기대하는 모습으로, 몸이 바뀌길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보다 더 확실하게 알려주는 장면이 있다.

본인 얼굴에 낙서하는 둘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서로 본인 얼굴에 낙서를 하는 장면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서로 몸이 바껴서 바보, 멍청이라고 쓴 이 얼굴을 봤으면 좋겠다는 행동으로 보인다.

몸이 바뀐다는 건 도대체 뭘까

일단 서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영화에선 나오지 않았지만, 소설에서는 서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몸이 바뀌는 시간이 상대방과의 유일한 소통 방법이다.

그래서 너무나 답답한 나머지, 미츠하는 도쿄로 직접 갔다.
타키는 오쿠데라 선배와의 데이트를 망친 후, 미츠하와 연결이 되지 않는 핸드폰을 바라보면서 몸이 바뀔 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되어서야 미츠하와 얘기를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가 며칠 째 몸이 바뀌지 않자, 직접 찾아간 것이다.

타키와 미츠하는 한 달에 10번 정도 몸이 바꼈다.
이 사이에 서로의 마음엔 사랑이 싹텄다.
어떻게 10일 만에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다.
10일이 그냥 데이트만 한 것도 아니고, 직접 그 사람의 삶을 직접 경험했다.
단순히 몸만 바뀌고, 모든 생각과 경험은 이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몸이 바뀐다는 건, 그 사람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도 그 경험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는 너, 너는 나가 되는 시간이다.

뇌의 시냅스 배선 패턴 그 자체일까.
안구나 손가락에도 기억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안개처럼 형태가 없는, 보이지 않는 정신의 덩어리가 어딘가에 있어서 그것이 기억을 간직하는 것일까.
마음이라든가 정신이라든가 혼이라고 불리는 것들.
OS가 들어간 메모리 카드처럼 그것을 빼낼 수 있는 것일까.

타키가 미츠하를 찾기 위해, 미야미즈 신사를 올라가는 동안 자신을 찾으러 온 미츠하의 기억이 떠오르자, 생각한 것이다.

신체로 올라가는 타키의 미츠하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기억은 몸에 각인된 것이다.
그래서 타키가 미츠하의 눈으로 텟시와 사야를 바라볼 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깨닫고 같이 지낼 수 있었다.
할머니를 바라보면 타키는 알 수 없었던 미츠하와 할머니의 추억까지도 희미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몸과 기억과 감정은 뗄 수 없을 만큼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미츠하의 눈으로 본 도쿄의 풍경을 외국처럼 보이는 걸로 표현했다.
타키가 미야미즈 신체에서 미츠하의 쿠치카미자케를 마시면서 미츠하의 몸이 되었을 때, 알 수 있었다.
미츠하의 몸을 통해 모든 기억과 감정을 이어받았기에 가능했다.

미츠하의 눈으로 본 도쿄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그래서 왜 이토모리 마을을 구하러 갔을까

몸이 바뀌는 경험을 통해 상대방의 인간 관계, 경험, 기억이 나의 인간 관계, 경험, 기억이 됐다.
타키는 본인의 몸으로 언젠가 텟시, 사야, 미츠하와 함께 얘기하고 싶어했다.
미츠하도 타키와 오쿠데라 선배를 만나고 싶어서 도쿄로 올라갔다.
이토모리 마을 사람들은 타키에게 더이상 남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다 알고 지낸 사람들이라는 미츠하의 기억을 이어받은 타키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자신의 가족, 친구, 이웃을 구하러 간 것이다.
미츠하에게 소중한 건, 타키에게도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깨달음 :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이 말이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말한 몸과 기억, 감정은 뗄 수 없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걸이, 옷맵시, 서있는 자세 등으로 사람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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