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츠하와 사야가 하루 종일 이토모리 마을에서 떠나고 싶다며, 불평을 했다.
졸업하면 같이 떠나자, 도쿄로!
이런 동네에선 어른이 돼도 학교의 계급 그대로 유지될 거야!
이 인습에서 벗어나야 해!
야, 텟시, 너도 같이 갈 거지?
미츠하의 물음에 텟시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뭐 딱히…
계속 이 마을에서 평범하게 살지 않을까?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텟시는 이런 마을이라도 좋은 걸까?
아니면 벌써부터 이 인습에 수긍하며 살아가기로 한 걸까?
텟시도 이 마을을 지독하게 싫어한다
사실 텟시도 이토모리 마을을 무지 싫어한다.
미츠하와 사야가 말한 모든 것에 동의한다.
어쩌면 이 둘이 말한 것보다 더 심하게 싫어한다.
아예 마을 자체를 통째로 부수고 싶어한다.
단순하게 마을이 답답하고, 일거리도 없고, 시집 갈 여자도 없다는 시시한 이유가 아니었다.
바로 자기 아버지 회사의 부패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마을 특성상 건축 회사인 아버지 회사가 잘 굴러가기 힘들다.
그래서 미츠하의 아빠이자 이장인 미야미즈 토시키와 함께 하면서 부패에 앞장서고 있다.
텟시는 마을이 없어지면, 이런 더러움이 사라지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한 거다.
마을에서 깨끗한 것만 기억에 남아있을 수 있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도 자기 힘으로 마을을 좋게 바꾸고 싶어하는 마음이 존재한다.
어차피 대학을 도쿄로 가봤자,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다시 이 마을로 돌아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돌고돌아 돌아오느니, 그냥 이 마을에서 살아가겠다고 생각한 거다.
자기가 후계자로 있지 않겠다고 한다면, 후계 문제로 회사가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인 것도 있다.
이게 없다, 저게 없다 불평만 한다고 해서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런 생각을 갖고 카페 만들기를 시작했다.
본인 손으로 직접 마을을 바꾸기 시작한 거다.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남들이 보기엔 아직도 불편한 게 많은 시골의 이런 마을이지만,
이렇게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좋아지지 않을까?
미츠하와 닮은 텟시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물론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과 만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유사한 사람을 좋아한다.
미츠하와 텟시는 일단 이 마을에서 해야 할 일이 정해져있다.
결국에는 미야미즈 신사를 관리해야 하는 미츠하,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아야 하는 텟시이기 때문이다.
거의 평생을 여기서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사야도 물론 거의 정해져 있긴 하지만, 이 둘보다는 자유도가 존재한다.
게다가 각자 가업은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도 주지만, 나쁜 영향도 주고 있다.
미츠하의 가업은 일종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상태다.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풍양제에서 추는 신악무와 쌀을 씹어 만들어 신에게 바치는 쿠치카미자케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추후에 글을 상세히 쓸 예정이다.
텟시 아버지의 건축 회사도 마을의 부패를 대표하는 회사다.
그래서 이 둘은 누구보다도 이 마을을 싫어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텟시는 미츠하와는 다르게 그런 표출을 하지 않을 뿐이다.
어차피 떠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싫다는 얘기만 해봤자 변하는 건 없으니 말이다.
“너의 이름은.” 영화 일부분
이렇게 미츠하와 텟시는 이런 환경이 닮아있다.
그리고 그걸로 스트레스 받는 것도 동일하다.
거기서 동질감을 많이 느꼈고, 텟시가 미츠하를 좋아했던 것이다.
텟시처럼 살자
이런 시도조차 머뭇거리는 사람이 많다.
나조차도 그렇다.
차라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다.
영화와 소설, 외전을 보면서 많이 느꼈다.
불평만 하지 말고, 텟시처럼 자그마한 행동이라도 시작하자는 것을…
오늘의 깨달음 : 내가 먼저 변하자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맘에 들지 않는 환경에 마주할 때가 있을 거다.
환경이 바뀌길 원한다면, 텟시처럼 내가 먼저 바뀌어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좋은 사람 곁엔 좋은 사람만 있듯이,
환경이 좋은 곳에 좋은 사람들과 있으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좋은 환경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래도 되지 않는다면, 변한 나와 맞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됐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