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세계관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인류는 핵전쟁으로 문명을 잃어버렸다.
지금 살아가는 후손들은 그 피해를 받아 자연과는 함께 살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살아갈 이유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영화 일부분
이 시대의 새로운 메시아, 나우시카
나우시카를 이 시대를 구원할 존재로 그렸다.
자연을 대표하는 오무에게 인정받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 염원하던 메시아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 사람,
푸른 옷을 입고 황금의 들판에 내려서서
잃어버린 대자와의 끈을 잇고
종내 사람들을 푸른 청정의 땅으로 인도할지니
이를 말한 종교는 토왕을 믿는 토착 신앙이다.
현재 이 세계관을 지배하는 신성황제의 황교 입장에서는 이단이다.
하지만 그런 신성황제조차 막지 못한 대해일을 막아냈다.
오로지 힘과 공포로 지배하던 힘은 이런 믿음과 구원으로 이뤄진 힘을 이기지 못한다는 걸 보여줬다.
영화에서는 나우시카를 메시아 그 자체로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자연(오무)가 인정하고, 우리를 청정한 땅으로 인도할 신으로 느껴졌다.
영화와는 다른 이야기를 펼치는 만화에서는 살짝 다르게 그려냈다.
자연이 인정한 신이 아닌, 신부로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나우시카 그 자체를 강조한 것보다는 하나의 관념으로 드러낸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결국 나우시카가 현재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로 이끌 사람이라는 건 동일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영화 일부분
또 하나의 주인공, 크샤나
영화에선 악역을 맡은 크샤나다.
하지만 만화에서는 엄청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지금 세계를 다시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토르메키아 국가의 유일한 성왕의 공주다.
하지만, 선왕이 죽고 친인척으로 즉위한 부우 왕으로 인해 견제를 많이 받고 있어서 힘을 잘 쓰지 못한다.
그럼에도 능력이 출중하고, 인품도 좋아 절대 다수의 병력이 크샤나를 존경하고 따른다.
나우시카는 화합과 자연과의 연결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면,
크샤나는 복수와 피로 물든 길을 가기로 택한다.
나우시카는 일찍이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히면 잘못된 길로 빠져든다는 걸 깨달았다.
크샤나는 후에 자기를 죽이려던 오빠가 죽어가는 걸 보고 난 후에야 이를 깨닫게 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영화 일부분
복수의 끝에는 그저 허무만 존재할 뿐이다.
증오와 분노는 끝없이 굴러가는 무한의 굴레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래서 자기를 끝까지 죽이려 했던 왕자와 부왕 모두 장래를 잘 치뤄주기까지 한다.
그렇게 이 굴레를 자기 손으로 끊으려 한다.
후에는 나우시카와 함께 이 모든 재앙의 근원이 되는 슈와의 묘소로 향한다.
서로 가야할 길, 바라보는 길이 다르다고 선과 악으로 나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그걸 중시하며,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다.
만화에서는 그게 명확히 나온다.
영화에서는 자연을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뿐이다.
조화를 통해 자연과 살아갈 건지,
파괴를 통해 부해를 부수고 잘 살아갈 건지…
오늘의 깨달음 : 증오와 분노는 필요없다
살면서 가장 쓸모없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굴레에 한 번 빠진 관계는 쉽사리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복수를 한다고 해서 뭔가 인생이 바뀌거나 기분이 좋아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음을 크샤나를 통해 깨달았다.
그저 그 끝엔 언제나 허무만이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