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모든 게 신기하고, 모든 게 놀이의 대상이 된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아는 게 많아질수록 호기심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이일 때가 가장 창의적인 시기라 한다.
나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곳에 위치했다 생각한다.
이 갈림길에서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아이가 되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이웃집 토토로” 영화 중 일부
두 자매, “메이”와 “사츠키”는 이사 온 집의 먼지를 보고 좋아라한다.
숲과 바람을 그 자체의 자연 그대로 느끼고 좋아한다.
심지어는 이들과 함께 놀기도 한다.
아이들한테 자연이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놀이터일 뿐이다.
바람과 숲을 단지 자연으로 보고 마는 어른이 아니다.
자연마저도 본인과 같은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봐준다.
그게 비록 먼지, 숲, 바람과 같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도 말이다.
“이웃집 토토로” 영화 중 일부
이러한 생각은 영화에 등장하는 “이나리 신사”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은 아무도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자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메이”와 “사츠키”와 같이
“자연은 생명체다”라고 믿으면, 자연도 생물이 된다.
그렇게 믿는 두 자매 앞에는 그렇게 믿지 않는 사람에겐 볼 수 없는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의 모습으로 “숲”과 ”바람”이 등장한다.
“이웃집 토토로” 영화 중 일부
자연과 사람은 비슷하다.
본인을 좋아하고, 믿는 사람에겐 한없이 관대하게 행동하게 된다는 거다.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는 두 자매에게 아무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도토리 씨앗을 선물해주기도 하고,
심은 씨앗이 잘 자라게 해주었으며,
아빠 몰래 엄마의 상태를 볼 수 있게 병원까지 데려다 줬다.
단지 자연에 대한 “믿음”만 존재하면,
모습을 보여주고 도움을 줄 뿐이다.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말이다.
“이웃집 토토로” 영화 중 일부
두 자매는 자연의 선물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선물받은 도토리 씨앗을 자신들의 텃밭에 심어,
이 마을의 또다른 숲이 되기를 바란다.
토토로는 이 “바람”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날 밤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의 바람대로 커다란 나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웃집 토토로” 영화 중 일부
“메이”가 실종됐을 때, “사츠키”가 토토로에게 찾아갔던 적이 있다.
왜 토토로는 메이의 실종 소리에 웃음을 지었을까?
이 장면이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전달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토토로는 숲을 상징하는 신이라고 느껴진다.
이 마을의 “이나리 신사”가 이를 모시는 신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토토로를 이토록 믿고, 도움을 청했던 사람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츠키”같은 사람을 오랜만에 본 신, 토토로는 기뻤던 것 같다.
“사츠키”의 믿음과 간절한 마음을 알고, 모든 걸 해준다.
이것도 그저 자연에 대한 믿음의 보상일 뿐이다.
“이웃집 토토로” 영화 중 일부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믿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어 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게 자연, 이웃, 친구,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이게 사실 무조건 당연한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할 때가 있다.
언제라도 없어지면, 그제서야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뿐이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이웃집 토토로”가 된 것 같다.
주변에 당연시하게 널려있는 자연은 항상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메이”와 ”사츠키”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소중한 것이라는 믿음을 그들에게 보여주면서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웃집 토토로” 영화 중 일부
오늘의 깨달음
“이웃집 토토로” 영화 중 일부
비가 오면 토토로에게 우산을 씌워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