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하늘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하늘은 인간의 감정은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날씨의 무녀는 인간의 감정을 하늘에 전달해 날씨를 바꿀 수 있다.
“날씨의 아이” 영화 일부분
날씨의 무녀
하늘의 기분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인간 측의 매개체다.
이 시대에는 히나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비 오는 날씨가 기본 날씨가 됐다.
사람들은 드물고 보기 힘든 맑은 날씨를 원한다.
그런 감정을 받아들여 히나는 맑음 소녀가 되기로 했다.
반대로 가뭄이 드는 세계였고, 사람들이 비를 원했다면 비의 아이가 됐을 거다.
그런 사람들의 감정을 가득 담아, 스스로 제물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을 때 날씨는 맑아졌다.
날씨의 아이는 사람들의 욕망으로 탄생한 존재였다.
히나 스스로가 원했던 건 아니었다.
“날씨의 아이” 영화 일부분
히나의 소원
히나가 날씨의 아이가 된 날, 그렇게 대단한 소원을 빈 건 아니었다.
엄청 흔해 빠진 소원이었고, 엄청난 힘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제발 엄마가 눈을 떴으면 좋겠다고
한 번만 더 세 가족이 파란 하늘 아래를 걷게 해달라고
이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고
이 소원을 빈 이후에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날씨를 맑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맑은 날씨가 된 이후에 엄마는 없었다.
이 힘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맑은 날씨는 누구를 향해 가는 건지도 몰랐다.
히나는 그저 아이었다.
이 힘으로 사실 돈을 벌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 힘을 그렇게 대단하게 느끼지도 않았다.
이 힘을 얻기 위한 소원의 대상이었던 엄마가 이제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힘을 이용하려고 했던 어른들 때문에 맑음 소녀가 됐다.
그 어른들 때문에 제물이 되어 이 세상을 맑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
아이가 아이답게 행동하기를 바라지 않는 세상이었다.
“날씨의 아이” 영화 일부분
나기의 소원
히나의 동생인 나기는 누나를 엄청 좋아하고 의지하고 있다.
나기는 누나의 힘에 대해 약간은 이해하고 있었다.
엄청 자기중심적인 힘을 얻었지만, 조금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돈을 받고 일을 했다.
그러다 결국 모두를 위해 하늘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비가 다시 오기 시작하자 기뻐한다.
누나가 누나를 선택해줘서…
누나가 조금은 이기적이게 본인을 위한 행동을 하기를 원하는 소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소원도 이뤘다.
“날씨의 아이” 영화 일부분
자신의 능력을 사회를 위해, 나와 상관없는 다수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걸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나다움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의 깨달음 : 사회에 필요한 자기중심적인 행동
자기중심적인 사회가 이기적인 사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만을 바라보고,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히나처럼 초월적인 힘은 아니더라도, 자기의 능력을 본인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걸 말하려고 한다.
무조건 타인을 위해, 사회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다를 바 없다고 보인다.
사람들이 때로는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에 각자만의 개성이 드러나고, 더 다양하고 재밌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나다움을 더 뽐낼 수 있는 행동을 하길 바란다.